농귀촌
[더,오래] 농사짓기 힘들다고? 그럼 '농촌관광'으로 승부수를 [중앙일보] 입력 2017.11.26
귀농·귀촌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마 도시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자연을 벗 삼아 안빈낙도하는 것이 그 첫 번째지 싶다. 그렇다고 하고많은 날 풀밭에 누워 뜬구름만 쳐다볼 수 없는 노릇이다. 할 일과 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해보시라. 절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농사일에 이골이 난 현지인과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9)
농사로 돈 벌기 힘들어 귀농보단 귀촌해야
농촌관광 수익성높아 귀촌의 새 장르될 듯
남해 독일마을에서 열린 맥주축제에서 참가자들이 독일민속의상을 입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남해군 제공]
경남 남해에 사는 청년 배정근 씨는 독일 마을을 명소로 만들었다. 1970년대 독일로 파견돼 정착해 살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남해에 독일식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독일 마을엔 매년 100만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그는 또 남해 해변의 두모 마을이라는 평범한 어촌을 농촌 체험마을로 변신시키고, ‘원예 예술촌’이라는 독특한 귀촌 마을을 만들었다. 원예 예술촌은 원예업 종사자들이 남해로 귀촌해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 그 안에 사는 주거형 테마파크다.
딸기 농사짓는 삼성전자 출신 경북 상주로 귀농한 곽연미 씨는 남편과 딸기 농사를 짓는다. 포도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모아 영농조합을 만들었고, 음식 잘하는 사람들과 ‘힐링 푸드 테라피’ 사업을 함께 하며 상주시 함창읍의 명물인 비단을 상품화하는 작업도 도와주고 있다. 그 전에는 삼성전자 마케팅팀 차장이었고, 남편은 LG전자의 부장이었지만 다 버리고 상주로 귀농한 지가 올해로 5년째다. 강원도 인제의 백승완 씨는 서울서 출판사 편집장을 하다가 10년 전 이곳으로 내려와 자연인 생활을 하고 있다. 농사도 안 짓는데 항상 바쁘다. 산촌을 농촌체험마을로 만들고, ‘아름다운 인제관광’이라는 래프팅과 번지점프를 하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인제군청에서 관광 마케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사업기획서를 만들고 주민들의 관광사업을 지원하는 일이다.
귀농체험마을, 양평 수미마을. [중앙포토] 신교진 씨는 포항공대 석사 출신이다. 서울에서 IT 회사에 다니다가 지금은 고향인 경기도 양평으로 돌아와 양평관광 협동조합의 사무국장직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해로 귀향 10년째로 그동안 ‘수미 마을’이라는 농촌체험마을을 일궜다. 올겨울은 양수리에서 새를 관찰하는 생태관광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소득원을 만들 작정이다. 지난여름에는 날벌레들을 관찰하는 곤충 교실을 열어 어린이 과학도들로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시골에서 관광사업을 창업하고 명소로 만드는 이들 다섯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귀농·귀촌했고, ‘관광 두레 PD’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는 것. 관광 두레는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관광 사업 공동체로 문화체육부가 지원한다. 이는 획일적인 관광개발을 탈피해 자발적이고 자생적이며 창의적 사업 거리를 만들자는 취지다. 관광 두레 PD는 지역의 명소와 특산물, 관광상품을 만드는 사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하는 사업을 농촌관광 또는 지역관광이라고 부른다. 농촌이나 어촌, 산촌을 기반으로 그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생태·역사·인물·장소·음식·농산물·마을 등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귀농·귀촌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볼 만 하다.
농촌체험마을로 찾아 온 관광객. [사진 김성주]
상주의 관광 두레 PD인 곽연미 씨에게 앞으로 귀농·귀촌할 사람들에게 해 줄 조언이 뭐냐고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귀농하지 말고 귀촌하라 ’다. 농사로 돈 벌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귀농·귀촌 가구 수는 2만1727가구로, 이 중 농사짓는 가구는 5%인 1058가구에 불과하다. 귀농·귀촌한 가구 중 5%만 첫해에 수익을 내고, 95%는 소득이 없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농사로 소득을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다.
농업은 기술 축적이 필요하고 환경 변화에 민감해 농민에게 절대 유리하다. 도시민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경쟁에서 번번이 밀려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농민들은 외지인이 농지를 사고 투자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농촌관광’이다.
농촌관광은 농촌의 일상을 체험하는 사업이다. 예를 들면 딸기 농사를 짓는 농가는 딸기 수확 철에 ‘딸기 체험’이라는 관광 상품을 내놓는다. 농장을 방문한 체험객들은 딸기 재배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딸기를 따서 포장 백에 담아온다. 쭈그려 앉아 딸기를 따며 달콤한 향을 즐기고, 시식하는 과정을 상품화한 것이다. 딸기체험은 어린이와 외국인들 사이에 인기가 좋다. 특히 동남아인들이 빨갛고 달콤한 딸기를 신기해하며 열광한다고 한다.
고령 개실마을에서 딸기체험 후 딸기 시식. [사진 김성주]
농민 입장에서는 딸기를 방문객에게 직거래로 판매할 수 있어 중간 유통경로를 생략하는 효과를 얻는다. 또 수확하고 선별하는 데 드는 인건비도 절감할 수 있다. 소규모 농가에서 해 볼 만한 사업이 바로 농산물 수확체험과 같은 농촌관광이다. 지역의 농민보다 도시에서 내려온 귀농·귀촌인이 성공하기가 더 쉽다.
농촌관광은 모든 농촌활동을 체험· 음식·숙박· 교육 등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상품화할 수 있다. 농가에서 하룻밤을 자며 토속 음식을 맛보는 농가민박 사업도 가능하다. 농가 주택 면적이 230㎡ 이하면 특별한 허가 없이 민박을 칠 수 있다.
농산물 생산 과정을 견학하는 체험상품은 초등학교의 현장학습과 연계되기도 한다.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콘도나 호텔에서 하던 워크숍을 농촌 마을에서 여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농산물 생산 현장을 직접 방문해 함께 재배하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높여 농촌 매력의 홍보에 기여한다고 분석한다. 정부에서는 육성하는 6차산업 중 하나가 농촌관광이다.
고령의 귀농귀촌 신영일 농가는 자신이 재배하는 표고버섯을 차로 만들어 방문객에게 내어 준다. [사진 김성주] 진화하는 농촌관광 농촌관광은 진화하고 있다. 농촌 마을에서 드론을 날리고 코딩 학습 현장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섞여 비빔밥처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으니 농촌은 더는 촌스러운 시골이 아니다. 문화 관광과 생태 관광을 동시에 보여 주는 곳이 농촌이다. 앞서 소개한 다섯 명의 관광 두레 PD처럼 자신이 사는 지역을 사랑받는 명소로 만드는 농촌관광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귀농·귀촌의 새로운 장르가 펼쳐질 것이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 농사짓기 힘들다고? 그럼 '농촌관광'으로 승부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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