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10.15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귀농·귀촌이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단어가 ‘꿈꾼다’다. 꽤 낭만적인 표현이다. 귀농·귀촌을 꿈을 꿀 정도이니 다들 자나 깨나 소망하나 보다. 가족과 함께 귀농·귀촌을 상의하고 합의하였다면 첫 번째로 할 일이 아마도 부동산을 고르는 일일 것이다. 귀농·귀촌 프로세스에 따르면 부동산 구매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할 일이지만 정착할 지역과 땅을 고르는 것은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이다. 나와 가족이 정착할 지역과 땅을 고른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많은 도시민이 아파트에 입주해 있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동호수에 살고 있다. 풍수지리를 그렇게 따지면서도 아파트만큼은 주어진 대로 들어가 사는 게다. 아파트 분양이라는 말도 우습다. 그냥 나눠 주어야 분양이라고 할 텐데 내 돈 수억 원을 들어 구매한 것임에도 분양받았다고 한다. 경쟁률이 높으면 추첨을 하고 당첨되었다고 좋아한다.
[고양=연합뉴스] 귀농·귀촌 박람회에서 관람객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만일 전세를 산다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적어도 2년을 살아야 할 그곳의 풍수와 지리를 따지는 것은 사치이다. 그저 이사 날짜와 금액만 맞으면 다행이다. 아파트를 고를 때 1층이나 꼭대기 층만 아니면 좋겠고 북향만 아니면 다행이라는 정도다. 내 돈 수억 원을 주고도 집의 위치와 방향, 동호수도 못 고르는 것이 아파트이고 도시의 주거다.
그러나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내 땅에 내 집을 내 맘대로 짓고 살 수 있다니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땅을 정하러 돌아다닌다. 경치를 본다. 풍경을 본다. 마을을 본다. 바람의 방향도 본다. 이것저것 잘 살피게 된다. 우리 나라에는 예쁜 곳이 참으로 많다. 부부가 함께 나들이 겸 땅을 보러 다니니 기분도 좋다.
나도 이 과정을 거쳤다. 10년전이다. 주말이면 차를 몰고 나갔다. 여기 저기 산과 들, 강, 그리고 계곡과 바닷가를 누볐다. 어떤 농사를 짓고 어떤 집을 지을지 머리 속으로 그려가며 신나게 땅을 알아 보고 다녔다. 6개월쯤 지나니 괜찮은 땅이 나타났다고 연락이 왔다. 어떤 땅이 매물로 나왔는지 모르기에 지역의 부동산 소개소 몇 곳에 부탁을 해 놓았더니 전화가 온 것이다.
━ 평당 2만원 짜리가 6만원으로
[서울=연합뉴스] 잘 알지 못하고 덥석 구매했다간 큰 코 다친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장님. 평당 6만원짜리인데 괜찮아요. 한 천평쯤 됩니다.” 냉큼 달려갔다. 약간 외지지만 길가의 밭이라 좋아 보였다. 천평이라고 하니 백평은 텃밭으로 쓰고 백평은 집을 짓고 육백평은 밭작물을 짓고 나머지는 놀이터로 만들어야겠다고 내심 결심하였다. 좋아서 헤벌죽하고 있는데 같이 있던 선배가 내 옆구리를 찌른다. 좀 더 알아 보자는 것이다. 선배는 이미 귀촌을 했기에 뭔가 아는 눈치였다. 계약을 잠시 미루자고 하더니 주변에 안테나를 세웠다. 어떤 땅이기에 6만원을 하는가 알아 봤다. 한참을 조사하더니 중요한 정보를 알아 냈다. 원래 평당 2만원짜리인데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4만원이 되고,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니 6만원이 된 거란다. 아니 이럴수가. 도시에서 왔다고 땅값이 껑충 뛰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게 아닌가 싶어 망설이니까 선배가 조언을 한다. “만약에 네가 이 땅을 6만원에 사면 어떻게 되는줄 알어? 덤터기를 써서 어쩌냐하고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 할줄 알지? 아냐 넌 2만원짜리를 6만원에 산 호구 소리 들어. 그리고 나중에 혹시라도 이사 가게 되어 땅을 팔 때 6만원에 샀으니까 7만원이라도 받아야 한다고 내놓잖아? 그럼 넌 땅값만 올리는 고약한 외지인 되는거야. 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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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연합뉴스] 귀농·귀촌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귀농에 대한 상담을 받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그렇다. 시골의 땅은 적당한 값이 있다. 특히 농사짓는 땅은 가격이 비싸면 채산이 맞지 않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선의로 산다고 해도 시세가 오르게 되면 지역 농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함부로 거래할 것이 아니다. 만약에 고추 농사를 짓는 땅이 평당 20만원이 넘어 가면 고추가 아무리 금값이 되더라도 투자비 회수가 어렵다. 원래 농사를 짓는 사람도 고추밭이 평당 20만원이 넘어간다면 고추 농사를 고집하는 모양도 우습게 돼 팔아 버릴 궁리만 한다. 땅값이 오른다고 좋은게 아니다. 농지가 투기장이 되어 버리면 농사 지을 땅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도시에서는 아파트를 비싸게 팔면 시세가 오른다고 주민들이 좋아할지 모르지만 시골에서는 땅이 용도에 맞지 않은 가격에 거래가 되면 지역의 근간이 붕괴되는 엉뚱한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원하는 땅을 적당한 시세로 살 수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고 평당 6만원짜리 땅을 원래 시세인 2만원에 사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 중개소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래하는 방법이 있는데 간단하지는 않다. 땅주인과 친해져야 한다.
마을에 정착해 1~2년 정도를 살다 보면 오고 가며 정을 쌓고 신뢰도 쌓여 가면 적당한 시세로 땅을 살 수 있게 된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귀농·귀촌은 오랫동안 준비해야 하고 설령 정착지를 골랐다 하더라도 지역에 안착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급하게 서두르지 않아도 언젠가는 원하는 땅을 적당한 시세로 살 수 있다. 물론 모든 부동산 중개소가 땅값을 무작정 올리지는 않는다. 일부가 그렇다, 일부가.
━ 집 구매 전 세얻어 살아봐야
요즘 귀농자 중에는 농지를 임대하여 농사를 경험해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중앙포토]
요즈음 귀농자 중에는 농지를 구입하지 않고 임대를 하여 농사를 경험해 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먼저 간을 보고 나와 궁합이 맞는지 알아 보고 토지 구매를 결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미리 시골에서 살아 보고 나서 이 정도면 나와 가족들이 무난하게 살 수 있겠다고 판단이 설 때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을 짓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세를 얻어 농가에서 살아 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느 지자체는 주말마다 귀농·귀촌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니 참여해 볼만하다. 꿈같은 귀농·귀촌 라이프를 위해서 소중한 땅과 집을 장만할 때는 도시의 아파트처럼 호가와 시세를 보며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소통하고 융화되는 시간을 가져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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