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추석 연휴가 시작됐다. 100만명이 한국을 떠나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명절 연휴가 여행 시즌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그러나 국민 대부분은 추석을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고 한다.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으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떨어져 사는 친지들을 만나러 이동할 것이다. 그러나 추석이 명절이 아니라 고난의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은 왜일까.
가족들과 함께 결정할 때 성공 가능성 커 일방적 통보 식이어선 죽도 밥도 안 돼 반대의견엔 논리로 설득하고, 강요는 금물
추석 황금연휴를 앞둔 29일 오전 인천공항 출국장이 여행객들로 붐비고 있다. 장진영 기자
충남 금산에 있는 ‘조팝꽃 피는 마을’은 봄이면 조팝꽃이 피고, 사계절 산채가 무럭무럭 자라 나물만큼은 걱정이 없는 마을이다. 폐교를 개조한 체험휴양시설이 있어 시골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러 오는 이들이 붐비기도 한다. 그곳에 워크숍이 있어 도와주러 들렀다가 사무장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올 추석에 많은 사람이 여행을 간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가여워서란다. 여성 입장에서는 추석 명절에 시댁에 가 전 부치고 음식 만드는 것도 고된 일이지만,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친정에 가면 조금 쉴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여행을 간다는 것은 연휴 내내 시댁 식구와 함께한다는 것이니 고충이 아니냐는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가족여행 차이
보통 도시에선 가족 여행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농촌에서는 시어른들을 모시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 늘 시부모를 모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조금은 기특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소가족 중심의 도시와는 다른 대가족 중심의 시골살이에서 며느리는 잠시 친정에 머무는 휴식이 명절 때나 가능한가 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나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차례상. [사진제공=궁중음식연구원]
그래서 아예 명절을 각자의 부모와 보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내봤다. 남편과 아내가 각자의 부모가 계신 곳으로 가 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나이가 먹어도 자식은 자식이니 어머니가 잘 먹이고 편하게 쉬게 할 것이 아닌가. 대찬성이었다. 맞다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부간에 눈치 안보고, 시누이 걱정말고, 며느리 신경 안쓰고 진정한 휴가를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해외로 가는 사람은 긴 연휴를 휴식 차원에서 보내기도 하지만 명절 스트레스를 피하러 가는 속셈도 다분히 있으니 그럴 듯 해 보였다. 물론 비현실적이다. 오랜 관행이 바뀌는건 의식과 제도가 같이 가야 하는데, 공론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건 즐겨야 한다’ 라는 말이 이때 적용되는가보다. 명절을 즐기는 방법은 많겠지만 혹시 은퇴해 귀농·귀촌을 꿈꾸는 분이 계시다면 이번 추석 연휴동안 대화를 많이 나누었으면 한다. 대화의 주제를 귀농·귀촌으로 잡고 어떤 삶이 벌어질 것인가를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 연휴가 열흘이나 된다니 귀농·귀촌에 관한 이야기는 신물나게 할 수 있다.
귀농·귀촌을 준비할 때 대개 간과하는 것이 가족들끼리 충분히 상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다. 남자들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앞서 갑자기 아내와 자식에게 귀농·귀촌을 통보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다 핀잔만 듣고 끝나버린다. 도시의 삶을 던져 버리고 시골살이를 택하는 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민의 수준에 해당하는 것인데,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귀농·귀촌을 결심한 전후 사정과 준비 과정을 짦은 몇마디로 끝내는 것은 무모하다. 게다가 이미 시골에 땅과 집을 덜컥 사 놓고 통보하는 이들도 있으니 참으로 용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후의 삶을 도시가 아닌 전원을 택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시골살이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고민해 보고 서로 상의를 해야 한다. 아마도 아내의 반대가 심할 것이다. 지금 편한 도시 생활을 어찌 버리고 벌레가 날아다니는 시골로 갈 수 있겠냐부터, 가서 뭐 먹고 사느냐,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땐 어쩌냐까지 부정적인 말들이 홍수를 이룰 것이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별별 잡다한 의견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할 터인데, 이때 화를 내면 안된다. 가족들의 의견은 정당하므로 이를 뛰어넘을 논리와 사례를 들어 설득해야 한다. 아니면 묵묵히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든지. 설득아닌 강요는 금물이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다. 못 넘으면 포기하자. 다음 기회를 노리자. 귀농·귀촌은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토지 구입은 끄트머리 프로세스
귀농 귀촌 프로세스. [사진 김성주]
귀농·귀촌에도 과정이 있다. 정부가 귀농·귀촌 프로세스를 만들어 권장하고 있어 이를 이용하면 좋다. 귀농·귀촌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맨 처음이 정보수집이고 두 번째가 가족과의 상의다. 그리고 작목결정, 영농기술 습득, 정착지 선정, 토지와 집 구매, 영농계획 수립과 같은 과정을 거치라고 권고하고 있다. 토지 구매 단계가 거의 끄트머리에 있다는 것은 투자를 신중히 하라는 뜻이고, 가족 상의 단계가 두 번째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의미다.
여러 해를 준비해야 하는 귀농·귀촌은 가족이 함께 했을 때 만족도와 성공률이 높아진다. 가족과 상의한다는 건 함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논의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니 명절이 적당한 기회다.
명절은 행복한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간이 돼 버렸다. 고향을 찾아가나 해외 여행을 가나 불편한 것이 현실이니 차라리 그 시간에 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게 어떨지. 이번 열흘이 넘는 추석 연휴는 귀농·귀촌을 토론할 절호의 찬스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5) 이번 추석 가족 모임을 시골살이 난상토론의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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