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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sungzu

[칼럼4] 농촌이 심심할 것 같지? 컨츄리테인먼트 어때?

최종 수정일: 2020년 12월 31일

2017.09.17 12:25



어느새 가을이 왔다. 지난여름이 워낙 불볕 더위여서 어서 계절이 바뀌었으면 했지만, 막상 서늘해지니 여름이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아쉬울 틈도 없이 명절이 다가오니 다들 분주하다. 그동안 가꾼 농작물들을 내어놓을 때가 된 것이다.


장장 4개월에 걸쳐 리그전으로 열리는 화투놀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주는 즐거움 취미가 일이 되는 도시와 달리, 일이 취미가 되는 농촌


과일을 재배하는 이는 살짝 불안하다. 늦여름부터 비가 자주 와서 맛이 오락가락해서 그렇다. 그래도 다들 행복하다. 일 년의 수고를 결산할 때가 오고 있다.



지난여름 더웠지만, 어찌 어찌해서 잘 보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뜨거울 때는 해변이나 계곡을 찾아가 버텼고 운 좋게 해외여행도 다녀 왔단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잘 논다는 것이다. 알차게들 잘 논다.


포천의 딸기농장 일경농원. [사진 김성주]


포천에서 딸기를 하는 일경농원에서 전화가 왔다. 요즈막이 올겨울에 나올 딸기를 심기 때문에 가장 바쁜 시기인데 3주 전 애가 태어났단다. 환갑이 다 되어서 웬 늦둥이인가 했는데 사람이 아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미니 피그가 예쁜 돼지 세 마리를 낳아서 자랑하려고 전화한 거다.


새끼를 받아 젖을 먹이고 목욕시키는 일이 꼭 사람 키우는 것 같단다. 조금 컸다고 팔에 안고 다니는데 귀여움이 최고란다. 젖 달라고 꽥꽥거리며 주둥이를 내밀다가 어느새 쌕쌕거리며 자는 게 늦둥이 같단다. 하긴 돼지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애완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나 돼지가 욕본다.


미니피그. [사진 김성주]


여주 한 농촌체험휴양마을 위원장은 이제 밤이 길어져 좋단다. 긴 팔을 휘두르며 워밍업을 하고 있다. 추석부터 다음 해 설날까지 밤마다 메이저리그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무슨 게임이냐고? 노인회관에서 벌어지는 화투다. 어르신들과 친구들과 모여 100원짜리 화투판이 장장 4개월에 걸쳐 리그전으로 열린다. 보통 세그룹으로 나누는데 할아버지 1팀, 할머니 1팀, 청년회 1팀이 노인회관에서 꿈의 메이저리그를 펼친다. 가끔 멤버를 섞어서 인터리그도 벌인다.


시골의 마을회관에서는 매일같이 화투판이 벌어진다. [사진 김성주]


노인회관은 다목적이다. 어르신들이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레스토랑이고, 마을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컨퍼런스룸이며 누구든 누워 잘 수 있는 호텔이고 달달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은 잠만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인회관에 계신다. 주민들은 노상 들락나락 거리며 믹스 커피를 마시거나 쉬면서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핀다.


저녁이면 포대기를 깔아 '메이저리그'를 벌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꽃이 핀다. 할머니는 선수를 위해 간식을 낸다. 화투판은 한판이 평균 3분인데 오고 가는 현금보다 오고 가는 대화가 더 즐겁다. 수줍은 할머니도 선수 입장하면 옛날 소싯적 역사를 읊으며 ‘GO’를 외친다. 대략 10시면 게임이 종료되는데 이상하다. 딴 사람도 없고 잃은 사람도 없다. 모두가 이기는 'Win-Win'이다.


평창에는 밤이면 별천지가 되는 마을이 있다. 이 곳으로 귀촌한 부부는 산나물에 꽂혔다. 둘은 낮에는 차와 장아찌를 만들 꽃잎과 나물을 가꾸고 말리고 덖고 우려낸다. 산에 올라가면 천지가 나물인지라 적당히 따서 건조해 직거래로 서울 사람들에게 판다. 몸이 안 좋아 산촌으로 왔는데 나물 따다보니 산채 전문가가 되었고 차 소믈리에가 되었고 건강해졌다.


평창으로 귀촌한 부부는 꽃잎과 나물을 가꾸고 말리고 덖고 우려낸다. [사진 김성주]


진달래, 뽕잎, 취, 달래, 두릅, 명이, 고추, 곤달비, 곤드레. 철마다 올라 오는 것을 따서 몇 번을 덖어 차로 마시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다. 서양에서 고급 취미라는 ‘애프터눈 티’는 여기서는 그냥 일상이다.


이분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은 무엇이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란다. 밤 하늘에 별빛이 깨알같이 쏟아지지만 앞은 전혀 보이지 않는 암흑이 참 재미있단다. 런던에는 어둠 속에서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이 인기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그냥 일상이다.


경기도 광주의 한 마을 이장님은 사냥이 취미다. 그는 멧돼지만 잡는다. 사실 농촌의 주적은 멧돼지와 고라니다. 야생동물이 먹을게 없어 농가에 와서 한번 휘적거리고 가면 밭작물들이 쑥대밭이 된다. 이장님은 어디선가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리면 홀연히 중무장으로 하고 현장으로 나타나신다.


멧돼지가 나타나면 중무장하고 출동한다. [사진 김성주]


워낙 몸집이 장대하고 머리를 바짝 쳐 올린지라 평소에도 '달라이 라마' 내지는 '달마 대사'로 불리는 그가 멧돼지를 소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병자호란 때 저 분이 우리 편이었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아군이라 다행이다. 집에 가면 아예 대형 냉동고가 있어 돼지고기를 잘 저장해서 연중 드시고 주변에 나누어 준다.


부인은 서울로 직장을 나가고 자녀는 이천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지라 저녁 늦게서나 모이는데 식탁이 흥미롭다. 멧돼지가 기본찬이다. 서울에서 고향으로 유턴한 그의 가족들은 도시로 직장을 다니고 있고 그는 농사와 살림을 담당해서 어째 주부처럼 보이지만 마을의 이장이자 파이터다. 마을의 적들을 소탕하는 헌터이다.


강원도 인제 하추리에는 귀농한지 15년된 박준수라는 갓 사십된 농촌 총각이 있다. 남들은 부모따라 귀농귀촌하는데 이 친구는 반대로 자기가 먼저 귀농하고는 나중에 부모님을 귀촌시킨 케이스다. 잘생긴 우리 총각이 뭐하고 노는지 궁금해서 관찰해 보니 노래 부르고 논다.


강원도 인제 하추리에 귀농한 박준수 씨. 귀농한지 15년이 되었다. [사진 김성주]


원래 노래를 잘 불러 대학 시절 아카펠라단을 조직해 공연도 하였다는데 요즈음은 강원도에서 주최한 농촌 문화예술 프로그램 공모전에 덜컥 당선되더니 지원금까지 받아 가며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내용은 '노래 부르기'이다. 음악 소리가 사라져가는 산촌 마을에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잘 놀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펜션의 이름조차 ‘물소리 바람소리’이다.


그리고 보면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레저나 취미활동과 같은 엔터테인먼트는 참으로 많다. 애완동물 키우기, 조류 탐조, 야생동물 관찰, 사냥, 등산, 차, 음식, 낚시, 갬블링, 민속놀이, 음악 등등 다양하다.


도시에서 이것을 할라치면 화투 빼고는 죄다 큰 돈과 큰 맘을 먹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시골에 오니 레저가 일상이고 취미가 직업이 된다. 요즈음 중학교에서는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한다. 자유학기제와 진로적성 탐색과정을 운영하면서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돼지체험하기. [사진 김성주]


도시에서는 뭐하고 놀까? 영화, 콘서트, 뮤지컬, 오페라? 글쎄다. 좋은 공연장이 도시에는 있겠으나 영화 빼고는 늘상 즐기는 여가 생활은 아니다. 도시인의 유일한 취미는 스마트폰 보는 것일진대 괜히 시골에 가면 문화생활, 여가생활 누리지 못한다고 판단하지 마시라. 지금 시골은 자연을 즐기며 수많은 액티비티를 즐기며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시골에서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나는 그것을 "컨츄리테인먼트"라 부른다. 이번 명절 혹시나 시골 고향에 가시게 되면 부디 컨츄리테인먼트를 누리고 오길 바란다.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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