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밥을 먹는다. 하루 두 끼만 먹는 사람이 늘었다지만 절대적으로 끼니는 세 끼다. 하루 세 번 밥을 먹는 것이 정석이다. 여기서 밥은 한 끼 식사를 의미하면서 또 한편 ‘쌀밥’을 뜻한다. 쌀로 지은 밥 한 공기가 있어야 제대로 된 한 끼 식사가 된다. 반찬은 그저 거들 뿐, 쌀밥이 주인공이다. 그래서 쌀은 우리의 주식(主食)이다.
오늘 아침에도 밥을 먹었다. 자그마한 그릇으로 된 공기 안으로 밥솥에서 밥을 꺼내 담았다. 그리고 김치와 함께 먹었다. 흰 쌀밥을 물끄러미 보았다. 기분이 찜찜해져서 보았다. 쌀이 문제였다. 맛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먹고 살자고 밥을 먹고, 농민들도 먹고 살자고 쌀농사를 짓는데 쌀이 문제다. 쌀이 애물단지다. 쌀이 도움이 안 된다.
금년에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외식 한 끼 식사는 보통 2000원씩 올랐다. 6000원 하던 순대국밥은 8000원이고 8000원 하던 소고기 국밥은 1만원이다. 4000원짜리 칼국수는 멸종되었다. 사람이 자잘해진다. 소주값이 5000원을 하니 취기에 ‘한 병 더’라고 외치던 버릇도 사라졌다. 술잔이 오가는 와중에 술병을 세고 앉아 있다. 며칠 전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3500원짜리 토스트를 고른 적이 있다. 그것도 햄을 넣으면 4000원이라 순수 야채 토스트를 골랐다.
모든 물가가 올랐으나 유일하게 가격이 떨어진 것이 있다. 쌀값이다. 지난 여름 쌀값은 최저였다. 가을 수확기에 잠시 쌀값이 오르기는 했으나 햅쌀이 나오면서 잠시 시세가 오른 것이다. 12월이 되자 다시 떨어졌다.
쌀값이 떨어졌으니 가계 사정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의 쌀값 폭락은 별 영향이 없다. 하루 세 번 꾸준히 먹는다지만 사람들이 먹는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021년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9kg이다. 일본보다 적게 먹는다.
밥을 먹다 TV를 보면 탄수화물이 건강의 적이라고 떠들고 있다. 특히 당뇨를 비롯한 성인병의 주범이라며 줄이라고 강조한다. 여성들에게는 탄수화물이 다이어트의 주적이란다. 수저로 밥을 듬뿍 떴다가 내려놓았다. 나는 지금 내 몸의 철천지 원수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는 쌀 못 먹는다.
쌀을 덜 먹으니 쌀이 남아 돈다. 쌀 생산량은 해마다 비슷하다. 2020년 여름철에 거의 두 달 동안 장마가 왔던 것을 기억하는가. 그래서 쌀 생산량이 조금 줄기는 했었다. 그때 쌀값이 오르지는 않았다. 쌀 생산량은 그대로이고 쌀 소비량은 줄고 쌀값은 떨어지니 정부에서 내놓은 방안은 쌀 생산 감축이다.
공급 과잉이니 쌀농사 대신 밭농사를 지으라고 권유한다. 전업을 하면 지원금을 준다. 쌀 생산지가 줄고 있다. 그래도 쌀값은 여전히 싸다. 수입 쌀이 있기 때문이다. 쌀 시장이 이미 전면 개방되었기에 수입 쌀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의무 수입 쌀이 있어서 돈은 돈대로 나간다. 의무 수입 쌀은 연간 40만 8700t이다.
떨어지는 쌀값에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벼농사 농민이다. 돈이 안 된다. 돈 되는 작물로 바꾸려 해봐도 딱히 좋은 작물이 없다. 열심히 조사해서 신작물을 선정해 재배해도 수확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 그 사이에 먹고 살 방도가 필요하다.
쌀이 남아 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쌀을 생산하면 이익이 남지 않는 것이 문제다.
원래 쌀 기르는 농민들에게는 쌀값이 일정 기준보다 떨어지면 쌀값을 보전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정부의 쌀 수매제라고 하는데 변동직불금이라고도 부른다. 지금은 없다. 공익직불금으로 바뀌었다.
변동직불금은 수확기 쌀값이 목표치보다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의 일정 비율을 쌀 경작 농가에 지급하는 보조금이다. 공익직불금은 변동직불금을 다른 작물에도 확대해 지급하는 보조금 제도이다. 쌀농사에 대한 직불금을 다른 작물에도 그대로 적용해 줄테니 쌀농사를 그만 짓고 다른 농업으로 대체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변동직불금은 2020년 양곡관리법에 시장격리가 도입되면서 사라졌다. 문제는 시장격리가 잘 안 된다는 것에 있다. 쌀 공급이 과잉이 되면 시장격리를 하여 쌀값을 안정화시키는 제도이다. 올해는 그 타이밍을 놓쳤다. 작년 가을부터 쌀값이 급격히 떨어지는 조짐이 있어 수급량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시장 개입을 해야 하는데 어정쩡했다. 실패했다.
이에 반해 쌀값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쌀값은 시장 논리에 의해 정해져야 하고 일방적으로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단다. 쌀이 남아도는데 굳이 비싸게 사들여 세금을 낭비한다며 양곡관리법조차도 반대를 한다.
시장 논리대로라면 농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먹을 것은 전부 수입해서 먹어야 한다. 싸니까 말이다.
농촌은 알아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정인데 귀농귀촌은 왜 장려하고 지방 소멸은 왜 걱정하는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지원하는 공익직불금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쯤되면 쌀자급률, 곡물자급률, 식량자급률이 무색해진다. 유사시를 대비한 식량 자급은 매우 절실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배우지 않았는가? 두 나라의 전쟁으로 국제 밀가루 가격이 폭등했다. 온 세계가 휘청거린다. 밀가루가 싸다고? 국수, 과자, 빵값을 보라.
쌀이 남아 도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쌀을 생산하면 이익이 남지 않는 것이 문제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4.4%이고 곡물자급률은 20%이고 쌀자급률은 84.6%이다. 자급률이란 국내에서 소비되는 식량 중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비율이다. 쌀자급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식량들이 자급률이 낮은 것이다. 식량을 수입을 하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이다. 그만큼 농업과 농민이 줄었다. 농촌이 사라졌다.
귀농귀촌을 한 이들 중에 벼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청년농 중에 부모의 논을 이어받아 하는 경우 외에는 드물다. 생산면적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수익성을 기대할 수 있는데 그나마도 소비량이 줄고 수입까지 되고 가격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쌀농사를 권하겠는가? 그나마 농촌의 노인들이 쌀농사를 고집스럽게 이어 가고 있어서 이 정도로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공기밥 한 공기에 원가가 200원이다. 가장 비쌌을 때가 270원이었다. 크리스마스라고 케이크를 주문하라고 문자가 오는데 할인해서 3만원이란다. 밥이 몇 공기인 건가. 밥이 목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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